독립기념관 관장실이 100일 넘게 불법 점거로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도 퇴거 조치나 적법한 법적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가기념기관이 장기간 점거당한 채 방치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천안동남경찰서는 현장을 관리하고 공공질서를 회복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사실상 무대응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모습은 공권력의 기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지역사회에 심어주었고, "왜 공권력이 필요한 순간에만 사라지는가"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낳고 있다.
이 문제는 한 기관의 운영 차질이나 행정적 지연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재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이념이나 진영을 초월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양심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위법은 위법이다,
공공기관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민주사회 기본 원리를 지켜내야 할 사람들이 진영 논리 앞에서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회적 갈등은
사실과 원칙이 아니라
"누가 했는가"로 판단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 결과,
한쪽 진영이 한 행동은 정당화되고,
다른 진영의 동일한 행동은 비판받는
일관성 없는 기준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민주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규범-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에는 책임을 묻는 최소한의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이다.
토론과 검증이 사라지고
정확한 사실 확인보다 감정적 프레임이 우선되는 환경에서는
부정과 비리를 걸러낼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그 틈을 타 부적절한 행위가 반복되고,
공공기관은 정치적·정서적 압력에 흔들리기 쉽다.
독립기념관 사태는 이 구조적 위기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 중 하나다.
공권력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법과 원칙이 아니라
목소리 크기와 세력의 힘에 의해 질서가 결정되는 사회로 전락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누구도 보호받지 못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진영이 옳고 그르다는 단순한 논쟁이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려는 의지,
양심을 양심대로 말할 용기,
그리고 공공질서를 지켜내려는 국가의 책무다.
독립기념관 100일 점거 사태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떤 기준을 잃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제는 진영논리의 장막을 걷고
법과 원칙이라는 최소한의 공통 토대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며
공권력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 우승정 시민연대 대표